20260201 함께지어져가는교회 설교
왜냐하면 하나님은
마태복음 6:9-13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저는 대표기도를 할 때마다 꼭 마지막에 붙이는 간구의 내용이 있습니다. ‘모든 것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입니다. 여러 가지의 바람과 간구의 제목들을 올려드렸지만, 어떠한 결과나 응답에도 감사하겠노라는 선포이자 고백인 것입니다. 간혹 ‘나의 기도의 방향이 틀리면 어떻게 하지? 주님이 원하시지 않는 그저 내 욕심의 기도이면 어떻게 하지?’ 라고 생각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제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제가 감사로 주님께 나아가겠습니다.’ 라는 고백의 의미인 것이죠. 그동안 저의 삶을 돌아보니 주님은 제가 간구한 것 이상으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또는 제가 바란 것이 아닌 다른 좋은 방법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때문에 저의 고백은 ‘모든 것 감사드리며’ 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또는 들어 주지 않으실지라도, 더디게 느껴질 때라도 감사하겠노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옳으시고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기도의 마지막을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마칩니다. 저도 그렇지만 많은 이들이 기도하는 마지막 구절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믿음과 기도의 배경을 알게 됩니다. 어떠한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등등 저마다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의 마지막은 무엇일까요? 사실 오늘 성경을 읽으면서 느끼셨겠지만 오늘 말씀에는 괄호가 되어 있습니다. 이 의미는 가장 오래된 마태복음의 사본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이후에 추가된 내용이란 뜻입니다. 성경의 많은 사본이 있는데, 사본마다 다른 부분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가장 보편적이고 신뢰도가 높은 구절들이 현재의 성경으로 남겨진 것인데, 오늘 본문은 가장 오래된 사본에는 없지만, 후대의 많은 사본들이 본 구절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의 말씀 안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첫 구절의 헬라어 본문은 이렇습니다. ὅτι (호티) 로 시작하는데, 이 단어는 이유를 말하는 접속사 ‘왜냐하면’ 이라는 뜻입니다. 1세기 초대교회 성도들이 주기도문을 기도할 때의 고백은 이런 것이죠. 우리가 이렇게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는 이유는, 왜냐하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의 것이며, 영원히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이라고 고백하는 것이죠. 그리고 모두의 화답으로 선포하기 위해 ‘아멘’ 이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이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간구하는 이유,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 빠지더라도 구해주실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원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를 호령하는 로마의 통치가 아니라, 영원할 것만 같은 로마의 권세가 아니라, 스스로 신이라 여기는 로마의 황제가 아니라 모든 것의 주인 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렇게 기도하는 것임을 공동의 기도의 선포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모든 나라가 속했습니다. 주님께 모든 권세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나을 수 없습니다. 주기도문이 힘과 능력의 선포가 되는 이유는 바로 ‘왜냐하면’, ‘왜냐하면’, ‘왜냐하면’ 바로 우리의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 바로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기도문은 그저 주문을 외우듯, 내 필요에 의한 맞춤형 신에게 간구를 하는 그런 소원성취의 기도문이 아닙니다. 주기도문은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며, 온 세상의 통치자이시며, 모든 영광과 존귀를 받기에 합당한 하나님이심을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기도인 것입니다.
옛말에 ‘누울 자리를 보고 자리를 펴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리를 펴고 싶어하지만, 편히 발 뻗고 누울 만한 곳을 찾지 못합니다. 좋은 곳인줄 알고 자리를 폈다가도 금새 한기나 더위가 찾아오거나, 다른 이들로부터의 텃새나 훼방을 통해 다른 자리를 찾아가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내가 누울 작은 공간조차 쉽게 찾기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단 물리적인 공간 뿐만 아니라, 나의 입지와 형편 정치적, 사회적 위치 뿐만 아니라 마치 좋은 줄을 찾아 동분서주 하듯이 바쁜 삶을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주기도문의 마지막을 선포하는 이들은 정말 좋은 자리를 찾은 듯 합니다. 그들이 기도하고 선포하는 모든 입술의 고백은 마치 천국을 찾은 듯한 노래, 찬양과도 같습니다. 로마로부터, 유대인들로부터의 핍박과 훼방으로부터 진정한 누울 자리를 찾은 희망의 노래인 것입니다. 내가 주께 간구합니다. 내가 주께 기도합니다. 내 삶을 주께 맡깁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모든 나라의 주인이시며, 모든 권세가 주의 것이며, 모든 영광이 주께 있기 때문입니다. 주기도문의 마지막은 놀라운 선포이자 찬양인 것입니다.
물론,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을 외치는 자들이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면서 깨닫고 알게 된 중요한 진리인 것입니다. 이 세상이 말하는 모든 것보다 위대하고 놀라운 주님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이 말씀을 다함께 선포한 것입니다. 그들이 기도하는 것보다, 그들이 간구한 것보다 더 놀랍게 주님이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짧은 간구와 기도에도 더 많은 것들로 채우신 주님을 경험한 것입니다. 단순히 내가 고백한 것만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만물의 주인 되신 주님이 행하신 열방의 하나님을 경험한 것입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의 가르침 위에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고백이 합쳐진 간구와 찬양과 진리의 고백인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기도할 때 자주 외치는 ‘모든 것 감사드리며’ 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지나온 세월들을 돌아보니 주님이 일하셨습니다. 제가 간구하고 기도한 것보다 더 크게 일하셨습니다. 그리 아니하셨으나 감사합니다. 나의 생각보다 크시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이심에 대한 감사의 고백이었던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신, 그리고 그렇게 선포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고백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기도를 어떻게 마치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기도가 이루어지고 역사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냐하면’ 을 완성해 보십시오. ‘왜냐하면’ 주님은 어떤 분이시기 때문입니까? 우리가 그냥 주문 외우듯 기도가 아니라면, 반드시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시는 간구와 선포라면,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이 시간 함께 기도하면 나아갑시다. 그리고 ‘왜냐하면’ 이후의 여러분의 기도를 완성해 봅시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