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8 함께지어져가는교회 설교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마태복음 6:9-12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오늘 성경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용서에 대한 도전을 주시는 주기도문의 말씀입니다. 물론 간구하는 제목은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이지만,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라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은 인자와 자비와 긍휼이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기에 당연히 아무리 큰 죄를 지을지라도 주님 앞에 아뢰기만 하면 다 용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이 땅에 보내셨을만큼 하나님의 사랑은 한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에도 조건이 있음을 말씀해 주십니다.
최근에 즐겁게 본 드라마가 있습니다. ‘ㅇㅇ택시’ 라는 제목의 드라마인데,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도저히 갚을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요청을 하면 택시가 출동하여 대신 악당들에게 응징을 하는 내용입니다. 하나 같이 인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악당들이라서 죄값을 받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내가 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에 시원하면서도 씁쓸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현실에서는 그런 통쾌한 복수나 응징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아픔과 상처를 지닌 채로 살아갈 것입니다. 내가 당한 만큼 다 해결하고 응징하려고 한다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도 씁쓸했습니다. 인과응보라고 하며 언젠가는 저들의 악함이 자신들에게 대가로 치르게 되는 날이 올거라며 위안을 삼지만, 그것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아픔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죄값을 치르시고 용서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억울함과 현실 속의 부당함을 해결해주실 영웅을 기다렸습니다. 당장 로마로부터 우리의 민족을 구원할,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로부터 거룩함과 정결함을 선포해주실, 모든 악당들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국을 건설해주실 분을 기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멀리하셨습니다. 놀라운 기적과 이적 이후에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왕과 영웅으로 삼고자 하였지만 정작 예수님은 혼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온 대제사장의 군인들에게 맞선 베드로의 칼을 거두신 이유도, 하늘의 열두 군단 되는 천군천사를 부르지 않으신 이유도 예수님은 누군가의 원수를 갚으시려는 것이 아닌 모든 이들의 죄값을 치르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와 소유로 삼는 구원의 메시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마지막 순간에도 예수님을 조롱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능력이 무엇인지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화평의 복음, 화목제물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갈라졌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당연히 죄로 인해 영원한 죽음으로 심판 받아야할 우리들을 위해, 우리 스스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죄는 죄를 낳습니다. 복수와 응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방법이 아닙니다. 오직 심판은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달린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하는 심판과 복수는 결국 스스로를 병들게 하고 죽음으로 향하게 합니다. 자신의 마음 속에 분노와 적개심으로 가득찬 상태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나를 위한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나를 병들게 하고, 결코 평안함이 없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정죄하는 마음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갈라진 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때문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용서입니다. 죄를 이기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용서입니다. 내게 행하신 주님의 크신 사랑을 의지하여 나도 그렇게 하겠노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 이후에 또 다시 강조하는 말씀이 마태복음 6:14~15 입니다. 다시 한 번 용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용서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용서’는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용서의 한자는 얼굴 용 또는 담을 용, 용서할 서 입니다. 담을 용은 골짜기나 큰 집에 담을 만큼이란 뜻이고, 용서할 서는 같은 마음을 품는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나의 마음처럼 품어주는 것이 용서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용서란 하나님의 크신 마음을 내 마음에 품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안되는 용서를 하나님이 하신 용서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품으시고 용서하신 것을 기억하며 내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주시도록 간구하는 것입니다.
잘 안됩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제가 일곱 번 용서하였는데 더 필요할까요? 예수님의 답변은 이렇습니다. 일곱 번을 일흔 번 하여라. 이것은 수치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용서에는 한계가 없다는 말씀이십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왜 여지를 주지 않으셨을까요? 하나님의 나라는 칼과 무기로 임하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과 긍휼과 용서함을 통해 임하는 평강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십니다. 복수와 응징의 결말은 죽음 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풍성히 열매 맺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른 이들의 죄를 다 갚아내려 하고 용서하지 않는다면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임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한 동안 미움과 분노가 치민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받은 상처와 아픔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산술적인 계산 뿐만 아니라 그들의 악함과 추함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용서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더 아픈 것은 그것을 제가 해결할 수도 없고 결국 저만 더 아프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금전적인 피해 뿐만 아니라 감정적 손실, 건강을 해치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시간이 해결해 줄거라 믿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처와 아픔은 마치 고리의 이자가 붙듯이 더 커져갔습니다. 복수와 응징은 커녕 제 자신을 황폐하고 피폐하게 할 뿐더러 제 주변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제가 복수를 하는 것도 문제가 되겠지만, 제가 복수를 할 수 없기에 더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제게만 일어나는 일일까요? 오죽하면 복수대행서비스라는 말이 나오고, 그런 드라마가 인기가 있었겠습니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든 사람은 상처와 아픔을 주고 받게 됩니다. 그러나, 모든 것에 계산기를 두들기며 청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죄에 얽매인 사람은 스스로 헤어나올 수 없습니다. 복수에 얽매인 사람에게 복수의 끝은 절망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용서를 말씀하십니다. 단순히 우리가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다의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고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 안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용서하셨고, 우리에게 용서를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매번 당하기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을 신뢰하는 것이며, 스스로 재판관과 심판자가 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용서하는 마음을 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며 여전히 내 마음 속에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나요? 그 마음 때문에 혹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진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이 주신 평안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여전히 청산되지 않는 계산서를 들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구합시다. ‘하나님 제가 이런이런 어려움과 아픔과 슬픔과 고통이 있습니다. 제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해결하여 주시고 제게 하나님의 마음, 사랑과 긍휼과 자비의 능력을 주셔서 용서할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하소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나아갑시다. 특별히 생각나는 사건 또는 사람이 있다면 주님의 시선으로, 마음으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