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삶으로

가장 거룩하고 정결하기 힘든 곳이 나의 가정일 것이다. 편하기도 하고 나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가족들에게 이중적인 모습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왕으로서 축복을 하고 자신의 가문에도 축복을 하려고 한다. 왕이자 남편이며 아버지인 것이다. 나도 교회에서는 존경 받을 만한 사람 처럼 여겨지지만, 집에서는 어떤

주의 군사 되어

하나님의 군대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싸우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군대이다. 자신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다윗의 군대는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며 싸우는 공동체였다. 내게도 이런 꿈이 있다. 억울하고 눌린 자들이 하나님의 꿈을 꾸고 하나님의 나라를 고대하며 전진하는 공동체를 이루고 싶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다시 일어섭니다

에브라임 지파에 재난이 있었고 다시 회복도 있었다. 족보 안에 들어갈 내용인가 생각이 들지만, 역대기는 단순히 족보가 아닌 새롭게 시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지를 주는 것이니, 실패와 고난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한 것이다. 나의 역사에도 아픔과 슬픔이 존재한다.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내

주를 의지합니다

야베스는 고통 중에 태어났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야베스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형제보다 귀한 자가 되었다. 그는 그의 이름을 극복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며 축복 받는 자가 되었다.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느 출발선에 있는 자라도 주를 의지하는 자를 힘있게 이끄신다. 나의

나를 새롭게 하소서

긍휼과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연약한 자의 신원을 살피시며 그들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신다. 아무리 놀라운 선행과 사역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를 떠난 자의 악행을 심판하신다. 므낫세의 죄악이 온 이스라엘과 하나님 앞에 진동하였다. 악한 영향력으로 이스라엘은 심판을 앞두었다. 무섭고 두렵다. 내 안에

주가 주신 사명으로 살겠습니다

히스기야가 자신의 생명을 위해 주께 간절히 구한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통해 15년의 생명을 연장 받게 된다. 그러나 그의 15년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삶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결국 하나님이 아닌 바벨론에 굴복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까지도 주께 의탁하셨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생명 보다

내가 달려가겠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왕의 명령과 재정이 있는데 성전 수리가 진행되지 않았다. 체계가 없던 것일까? 열정이 없던 것일까? 제사장들이 거하는 성전의 수리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이 의아하다. 하지만 요아스의 성전 수리에 관한 열정은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전을 향한 열정이다.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주를 향한

신실하신 주의 언약

유다에 비극이 임했다. 왕과 왕자들이 다 죽임을 당하였다. 아달랴는 권력욕에 자신의 친족들을 죽이고 스스로 왕을 자처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죄는 자신을 왕으로 삼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 자신의 만족대로 사는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지만 하나님은

나에게도 오십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나라와 민족의 큰 일들을 감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름 모를 한 제자는 도끼를 빠뜨려 좌절하고 있다. 유독 무명의 제자에게 눈과 마음이 간다. 내 모습과 유사하다. 작은 일 조차 잘 해내지 못하고 한탄과 원망의 목소리가 나온다. 물론 나라의 중대사 앞에 무엇이 그리

두려워하지 말고

엘리야도 두려워할 수 있다. 이미 그는 죽기를 간구하였었다. 하나님의 사람일지라도 본능적인 두려움과 좌절과 고통을 느낀다. 하나님의 사람은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토로하고 드리는 것이다. 하물며 믿음 없는 나와 같은 사람이랴. 매우 두렵고 무섭다. 나같은 연약하고 어리석은 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