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가 선포되었다.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는 나라이다. 그토록 염원하던 구원자를 통해 원수들을 무찌르고 승리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다. 다윗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의 모습을 보게 된다. 겸손히 주를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리는 나라이다. 한 사람을 통해 참된 주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신다. 나도 그 나라를 경험하고 싶다.

복이 되리라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한없는 축복을 주신다. 다윗은 그것을 알고 자신의 후손들에게까지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한다. 자신에게서 축복이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흘러가도록 축복의 문을 여는 자다. 간혹 문을 닫는 자가 있다. 그래서 축복이 멈추게 되고 결국 자녀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한다. 나는 그런 우를

리더의 품격

내 마음으론 이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 나를 죽이려고 온 이스라엘을 샅샅히 뒤지던 사울의 죽음과 자신의 왕위 보다 사랑했던 요나단의 죽음이 동시에 일어났다. 어떤 감정이었을까?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다윗은 슬픈 노래로 온 민족이 애도할 수 있게 하였다. 그는 리더다. 온 이스라엘이

주를 힘입어

통독을 하다가 항상 이 말씀 앞에서 멈추게 된다. 다윗은 어땠을까? 그리고 그의 무리들은 어땠을까? 어쩌면 다윗의 가장 어려운 순간이 바로 이 순간이 아니었을까? 모든 이가 등을 돌렸다.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들마저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모든 사람이 인내심의 한계를 보이며, 분노로 원망의

주를 경외함

원수를 해할 두 번의 기회를 포기하였다. 하나님이 기름 부으셨기 때문에 그를 해할 수 없는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다시 그를 보내주었다. 즉, 자신의 생명 보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더 컸던 것이다. 누구나 이런 기회 앞에선 흔들릴 것이다. 게다가 곁에서 이것은 주가 주신 기회하고

보게 하소서

현재 다윗은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사울 왕은 그를 잡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하고 있다. 분명 잡힐 것만 같은데, 오히려 다윗은 점점 세력을 얻어간다. 사람들이 모이고 사랑하는 요나단에게서 힘을 얻는다. 현실은 어려워져만 가는데, 다윗의 세력은 힘을 얻는다. 하나님의 일이 그렇다. 내 눈으로 보기엔 전혀 느껴지지

강한 용사로

요나단은 골리앗을 무찌른 다윗을 보고 사랑하게 되었다. 승승장구할 때에는 누구나 곁에 있고 싶어하지만, 다윗은 현재 궁지에 몰려있다. 아버지인 왕이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하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요나단은 다윗을 사랑함으로 맹세한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사랑하게 만들었을까? 하나님 앞에 같은 신념을 가진 자에 대한 동질감 또는 사랑이었을

주 앞에 엎드려

하나님을 떠나 주의 말씀 안에 거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이다. 결국 나를 위한 결정, 나의 이익과 성공만을 위한 결정은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이다. 종교란에 기독교를 적었다고 해서 모두 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하나님 조차도 나를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우상과도 같다. 오직 하나님이

주님만이 왕이십니다

좋은 리더를 원하는 마음이 잘못된 것일까? 나 또한 그동안 좋은 리더를 찾아왔다. 가능하면 그런 리더와 함께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었다. 내가 고민하지 않아도 좋은 길로, 좋은 방향으로, 좋은 결과를 내 줄 수 있는 사람과 동행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없다. 오직 주님만 그러실

갈급한 내 맘

여호와의 궤가 성소에 있지 않은데, 오히려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게 되었다. 사사 엘리는 오히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였다. 그의 자녀들도 주를 경외하지 않았다. 여호와의 궤가 전쟁터에서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결국 하나님은 모든 곳에 거하시는, 사람들의 갈급한 심령에 거하시는 분이시다. 신앙생활의 연수와 직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