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능력
엘가나는 공감 능력이 없어 보인다. 그는 현상에 주목하고 내면을 보지 못하는 모양새다. 사랑하는 아내의 아픔이 무엇인지, 듣고 싶고 격려 받고 싶은 말과 마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한 때, 나도 아내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해결책을 제시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만을 생각했다. 한나에게 필요한 것이
엘가나는 공감 능력이 없어 보인다. 그는 현상에 주목하고 내면을 보지 못하는 모양새다. 사랑하는 아내의 아픔이 무엇인지, 듣고 싶고 격려 받고 싶은 말과 마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한 때, 나도 아내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해결책을 제시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만을 생각했다. 한나에게 필요한 것이
보아스는 사별한 이방 여인을 축복한다. 편견과 관습적인 시각이 아닌, 그녀가 선택한 길을 축복한다. 자신의 미래를 오직 시어머니와 하나님께 맡긴 여인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오르바의 길이 아닌 룻의 길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삶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내 삶의 주인이 이제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임을 정했다. 내 힘으로
베냐민 지파의 영적 상황을 말하고 있다. 아무도 나그네를 영접하지 않는다. 넓은 거리 즉, 많은 이들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숙소를 찾는 그들을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 그들을 맞이한다는 것은 곧 재앙을 집에 들이는 것이라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들이 거리에서 잠들면 행악을 저지르려는 속셈이었을까? 하나님께서 노아의 홍수 때에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수백 Kg의 무게를 40km 정도의 거리까지 어깨에 메고 이동하였다. 하나님이 삼손에게 주신 능력이다. 나실인으로 주님께 바쳐진 거룩한 사람이지만, 그는 그의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모든 이에게 능력을 주셨다. 그러나 모두가 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일에 아름답게 사용하는
자신을 놀라움 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이름이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인이 출생을 하고, 거룩함으로 구별되며, 민족을 구원할 사사를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하시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이것은 하나님이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실 일들의 예고와 같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행하실 능력의 주님의 음성과도 같다. 주님
하나님의 본심은 재앙과 심판이 아니라 미래와 소망이시다. 하나님을 찾는 자들을 구원하시며 그들의 곤고와 필요를 살피신다. 하나님을 떠난 것 자체가 고통이며 슬픔이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로 결정하셨고, 놀라운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다. 그래서 주님을 찾을 때
어찌 이렇게 태새전환이 빠른가 싶지만, 생각해보면 나조차도 그렇다. 절실하고 갈급할 때에는 하나님을 찾지만, 평안하고 배부를 때에는 나를 위한 것을 추구한다. 내 능력의 부족함을 느끼면 주를 찾지만, 내가 무엇인가 이룬 것 같고 할 수 있을 것 같으면 나를 의지한다. 우상이라고 해서 특별한 존재를 말하는
내 삶도 이와 같다. 잘 될 때는 내 힘인 것 같다가 결국 주님 앞에 엎드리게 되는데, 또 언제 그랬냐는듯이 내가 잘한 것 마냥 우쭐되는 것이다. 하지만, 깨닫는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음을. 내가 가진 것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나는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믿음 이전에 나 스스로와 약속했던 일들을 행하고 주님 앞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살기 원한다. 내가 주 앞에서 했던 고백들과 찬양들은 수없이 많으나, 사실 다른 이들이 내가 무슨 고백을 했는지 알 길 없다. 하지만, 내가 주님 앞에 했던 고백들은 나 스스로가
공동체에서 분리되는 일이 쉽지 않다. 함께 예배하던 공동체가 울타리가 되어 주를 떠나지 않는 큰 이유가 되었을 것인데, 이제 스스로 주 앞으로 나아가야하는 열심이 있어야 한다. 목사인 나도 공동체를 떠나면 방황한다. 그러나 예배를 잊지 않기 위해 부던히 노력한다. 묵상과 기도와 통독을 이어간다. 그리고 또다른
ㅋㅋㅋ 어떤 부분이 설레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