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나와 싸우시는 주
하나님은 승리하신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은 대대로 더불어 싸워 이기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런데 가만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도 싸우시는 듯 하다. 광야에서 고기가 없다고, 물이 없다고, 승산이 없다고 원망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같다. 하나님의 전쟁은 적군을 향해서도, 스스로를 작게 여기고 원망하는 아군을 향해서도
하나님은 승리하신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은 대대로 더불어 싸워 이기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런데 가만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도 싸우시는 듯 하다. 광야에서 고기가 없다고, 물이 없다고, 승산이 없다고 원망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같다. 하나님의 전쟁은 적군을 향해서도, 스스로를 작게 여기고 원망하는 아군을 향해서도
이드로는 자기의 역할을 하고 떠났다. 하나님은 이드로에게 모세에게 조언을 하고 초기 세팅을 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도록 하고 다시 모세를 떠나게 하셨다. 더 있으면 안되는 것일까? 모세의 리더십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의 리더는 모세다. 그것이 변질되어서는 안된다. 이드로의 가장 큰 역할은 모세의 리더십을 더 굳건하게
하나님은 승리하신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은 대대로 더불어 싸워 이기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런데 가만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도 싸우시는 듯 하다. 광야에서 고기가 없다고, 물이 없다고, 승산이 없다고 원망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같다. 하나님의 전쟁은 적군을 향해서도, 스스로를 작게 여기고 원망하는 아군을 향해서도
이드로는 자기의 역할을 하고 떠났다. 하나님은 이드로에게 모세에게 조언을 하고 초기 세팅을 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도록 하고 다시 모세를 떠나게 하셨다. 더 있으면 안되는 것일까? 모세의 리더십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의 리더는 모세다. 그것이 변질되어서는 안된다. 이드로의 가장 큰 역할은 모세의 리더십을 더 굳건하게
소신껏 살아갈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옳다고 말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진리를 수호하고 담대히 선포할 수 있을까? 나의 편리함과 나의 유익을 위한 결정이 아닌, 불편함과 고통을 감수한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런 결정을 내린 일들이 많지 않은듯 하다. 나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었다. 소의 피를 반은 제단에 뿌리고 반은 백성에게 뿌렸다. 피의 언약을 맺으신 것이다.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듯이 다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다. 직접 백성의 리더들에게 피를 뿌리시며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거룩한 동행과 교제를 하시기로 결정하셨다. 그 피를 맞은 백성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잊을
야곱의 축복이 이어진다. 그러나 단 지파를 향한 축복 이후에 야곱의 혼잣말 같은 선포가 이어진다. 단의 미래를 보았으리라. 단으로 인한 우상숭배와 타락을 보았으리라. 그러나 주의 구원을 선포한다. 그럼에도 주가 하실 일을 기다린다. 하나님은 나의 연약함과 죄악까지도 다 아시지만, 여전히 나를 향한 사랑과 긍휼과 구원을
야곱의 축복이 이어진다. 그러나 단 지파를 향한 축복 이후에 야곱의 혼잣말 같은 선포가 이어진다. 단의 미래를 보았으리라. 단으로 인한 우상숭배와 타락을 보았으리라. 그러나 주의 구원을 선포한다. 그럼에도 주가 하실 일을 기다린다. 하나님은 나의 연약함과 죄악까지도 다 아시지만, 여전히 나를 향한 사랑과 긍휼과 구원을
소신껏 살아갈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옳다고 말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진리를 수호하고 담대히 선포할 수 있을까? 나의 편리함과 나의 유익을 위한 결정이 아닌, 불편함과 고통을 감수한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런 결정을 내린 일들이 많지 않은듯 하다. 나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었다. 소의 피를 반은 제단에 뿌리고 반은 백성에게 뿌렸다. 피의 언약을 맺으신 것이다.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듯이 다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다. 직접 백성의 리더들에게 피를 뿌리시며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거룩한 동행과 교제를 하시기로 결정하셨다. 그 피를 맞은 백성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잊을
ㅋㅋㅋ 어떤 부분이 설레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