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귀한 자녀
하나님은 나를 존귀한 자로 택하시고 구별하셨으나, 원수는 끝없이 나의 존재를 부정하고 훼손한다. 내 안의 여러가지 불순물들과 찌꺼기들이 나의 정체성을 흔든다. 나는 존귀한 주의 자녀로 살아가야 하며,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축복과 권세를 누릴 자인데, 속은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세상의 조류에 휩쓸려 방향을 잃을
하나님은 나를 존귀한 자로 택하시고 구별하셨으나, 원수는 끝없이 나의 존재를 부정하고 훼손한다. 내 안의 여러가지 불순물들과 찌꺼기들이 나의 정체성을 흔든다. 나는 존귀한 주의 자녀로 살아가야 하며,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축복과 권세를 누릴 자인데, 속은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세상의 조류에 휩쓸려 방향을 잃을
놀러온 인생처럼 살고 싶다. 놀라운 인생을 살기보다 주의 품에 머물러 젖을 빨고 주의 무릎에서 노는 삶을 살고 싶다. 하나님 나라이며, 평안이며, 축복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평안하기가 쉽지 않다. 어린 아이 시절에는 근심이 없었는데, 연수가 더해갈수록 근심과 염려가 많아진다. 내 생각을 비우고, 주님의 말씀으로 내
하나님의 생각은 나의 생각보다 항상 놀랍고 크시다. 내가 노력하여 얻은 결론들도 하나님 앞에 비할 수 없다. 그래서 묵상의 시간이 귀한 것이다. 주님 앞에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구하는 이 시간이 너무도 귀하다. 말하는 시간보다 듣는 시간이 더 좋다. 내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듣고
인생에는 한계가 있다. 젊음과 건강은 영원하지 않다. 100세 인생 시대를 산다고 하지만, 질적인 삶을 산다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되도록 오래동안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활용가능한 사람이어야 인정받는다. 젊음을 더 오래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평생에 동행하시며, 나의 값을 나이에서
하나님은 눈이 어두어 앞을 보지 못하며, 빛이 없는 흑암 가운데 있는 주의 자녀들을 지름길과 광명으로 이끄신다. 나는 맹인과 같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고, 안다 할지라도 내 길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고 기다릴 뿐이다. 두렵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히스기야의 고백이 옳지 않아 보인다. 물론 겸손히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듯 하지만, 자신의 허물로 시작된 심판이 내 때에 임하지 않는 것에 만족하는 듯한 말투는 옳지 않아 보인다. 자신의 때의 영광이 지속되길 간구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왕의 품격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의
나의 존재는 결국 어떤 생각을 많이 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로 정해진다. 나를 다스리는 생각이 나를 움직이게 하고 인생의 길을 정하게 된다. 영의 생각을 하면 생명을 얻고 육의 생각을 하면 죽게 된다. 존귀한 자는 존귀한 계획을 세운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며 기뻐하시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세 전부터 계획하신 혼인잔치가 열릴 것이다. 열방의 모든 주의 백성들이 모여 주가 준비하신 포도주와 기름진 것들로 즐거워할 것이다. 그 날을 고대한다. 그리고 오늘도 그러한 하나님의 날임을 선포한다. 내 삶은 근심과 염려가 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오늘도 내 삶에 잔치가 열리고 있음을
하나님은 모든 열방의 주관자이시다. 세상의 모든 큰 나라들을 다스리시며 도구로 사용하신다. 전세계의 뉴스를 보면 하루가 다르게 지형이 변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과 각가지 소식들로 정신을 차릴 수 없는데, 하나님은 놀랍도록 모든 것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신다. 그렇다. 하나님은 한없이 친밀하시지만, 광대하신 분이시다. 팔짱 끼고
내가 의지하는 많은 우물들이 있다. 사람과 재정과 기회와 도움들을 의지한다. 우물에서 얻을 때도 있으나, 빈 그릇으로 돌아올 때도 많다.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의지할 수 있으나, 영원하진 않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부족함 없이 채우신다. 내 잔이 넘치도록 채우신다. 구원의 우물에서 나를 채우시고 덮으시는 기쁨을
ㅋㅋㅋ 어떤 부분이 설레이십니까?